드웨인은 꺼진 핸드폰 화면을 꼭 쥔 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이 작은 물건에서 소리도 나오고 이상한 화면도 켜졌다가 사라졌다 반복했다. 에른은 이걸 휴대용 전화기라고 설명했는데 로웰의 기억만 있는 드웨인이 그걸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과학과 기술이 진보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걸 누려요. 그리고 신분제도 사라졌어요. 다만 지금은...
차가운 바닷바람이 살을 베는 듯 몰아쳤다. 하지만 로웰은 육신의 고통이 무엇인지 잊었다. 오만과 아둔함으로 제 오메가와 아이까지 잃은 자신에게 살아간다는 의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미쳐버렸던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애절했던 베르가못의 흐느낌이 귀에서 윙윙거렸다. 감은 눈을 떴다. 절벽 끝, 그 너머로 광활한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푸르디 푸른 하늘과 깊고...
"키멜, 아빠가 오셨어요. 집에 갈까요?" "진짜요?!" 친구들과 놀던 작은 여자아이가 신이 난 듯 파란 가방을 서둘러 메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키메르안 오스왈드, 앞으로 일주일만 더 있으면 6살이 되는 5살 난 작은 알파 여자아이는 세상에서 엄마아빠를 제일로 좋아했다. "엄마아빠!" 신이 나서 달려간 유치원 입구에는 엄마아빠가 아니라 진짜 아빠가 서있었...
녹음이 가득한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드웨인은 바쁘게 침실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며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가져갈 물품을 한 번 훑었다. 가방을 챙겨들자 에른이 아이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왔다. "뭘 그렇게 많이 챙겼어요. 진료만 보고 오면 되는데." "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에른 허리 아플텐데 키멜는 이리 주세요." "키멜이 얼마나 무겁...
에른은 벽에 커다랗게 걸린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하얀 웨딩슈트를 입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은 꽤나 잘 어울렸다. 별로 안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특히나 드웨인은 동화속에서 나오는 엘프같아 보였다. 그에 비해 에른은 평범했지만 드웨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에른이 자기에게 과분하다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팔불출같은 모습에 ...
드웨인은 에른과 함께 옥상 정원으로 향했다. 탁 트인 시야로 푸른 하늘이 훤하게 펼쳐졌다. 여름 햇살이 따갑기는 했지만 견딜만 했다. 드넓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심란했던 마음이 조심씩 풀어지는 듯 했다. 드웨인은 언제 준비한 것인지 모를 캔음료를 에른앞에 내밀었다. "날이 좋네요." "하늘을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별로 바쁘게 산 건 아니었는데." "그...
에른의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빠른시일 내로 방문하라는 의사의 말이 둥둥 떠다녔고 드웨인은 에른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입덧은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몆 주 사이에 지나치게 핼쓱해진 드웨인을 보며 에른은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며 심란해 했다. 빨리 결정하지 못해서 드웨인이 더 고생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근 3주가 더 지났고 ...
소란스러운 응급실로 에른이 뛰쳐들어왔다. 지나가던 병원직원을 붙잡고 다급하게 다그쳤다. "저! 그러니까- 드웨인, 드웨인 오스왈드라는 분을 찾으러왔는데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직원은 저쪽에 있다며 손을 들어 응급실 한켠을 가리켰다. 그 끝에는 여러사람들로 둘러싸인 드웨인이 있었다. 허옇게 질린 드웨인이 에른을 발견한건지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표정이 ...
포근한 베르가못 향이 몸을 휘감았다. 드웨인은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부터 차오르는 뜨거운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왈칵하고 눈물부터 터뜨렸다. 핏기가 가신 얼굴색이었지만 에른은 더없이 행복한 듯 웃으며 그만 울라고 드웨인을 타박했다. 옆에서 보기좋다며 웃는 간호사가 드웨인을 향해 작디 작은 어린 아기를 안아보라며 건넸다. [이제 진짜 아빠가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베르가못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로웰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텅 비어버린 녹색빛 눈동자가 반짝이는 관으로 향했다. 몇 번이고 그것을 열고 깊이 잠든 이를 꺼내든 채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후두둑 쏟아지는 눈물이 이제는 익숙했다. 툭하면 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잘 알게 되...
찬란한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쳐들었다. 잠이 든 듯 가지런히 감긴 두 눈을 쓸었다. 차가운 비에 창백해진 피부가 서늘했다. 비내음 사이로 흩어지는 베르가못향기가 점점 옅어졌다. 깊게 파고든 화살을 차마 빼지못했다. 붉게 물드는 하얀 옷가지가 비현실적이었다. 그럴리가 없다. 아니야, 잠이 든 것 뿐이리라. 그럴리가 없어. "... 그럴리가 없다. 그럴리가 없...
이것저것 소소하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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